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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사람들이 왜 고난을 받는가?
    회복의 길 2021. 3. 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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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1 3절을 보면 "그는 시냇가에 옮겨져 제 때에 열매를 맺고 그 이파리가 마르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이 모두 잘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믿는 이들은 구원받음으로써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 신앙의 여정 속에서 만사형통의 생활을 기대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삶을 산다면, 모든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고난을 받고 있다.

    가끔 방송 프로그램에서 예수님을 믿었더니 하는 일마다 잘되고, 자식들도 주님이 돌보셔서 공부를 잘하고 하고 싶은 일도 잘하고 있으며,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생활한다고 간증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의 신실한 믿는 이들은 고난받는 생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고난이라는 난제는 워낙 방대하기에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고난은 언급하지 않겠다. 믿는 이들 중에서 처럼 온전하고 올곧은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욥기 1:8)의 고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고난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찰하여 도달한 결론은 (1)사람은 쉽게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므로 교정받기 위해 사람에게는 고난이 필요하다. (2)고난을 거쳐야만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고난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을 참되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3) 우리가 인내를 배우려면 고난을 통하여 징계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비교 롬 5:3).  ··· (4)우리가 하나님께 유용한 그릇으로 빚어지려면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연구 끝에 나온 좋은 결론이지만 이것 만으로는 고난의 최종 답변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욥을 위로하러 온 세 친구가 한 행동 중에서 가장 잘한 행동은, 칠 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후로 욥의 고난에 대해 인과응보라는 말을 하면서 단죄함으로써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반발만 불러일으킨다. 고난 받는 자에게 섣부른 위로나 훈계는 상처만 더 깊게 할 뿐,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좋다.

    욥기의 마지막에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야, 욥은 "제가 주님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으나 이제는 제 눈으로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러기에 제 자신을 혐오하며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42:5~6)."라고 고백한다. 욥이 하나님을 본 것은 위대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이고, 하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고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욥기의 마흔 두 장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된 위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을 다루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가 필요하다. 특히 신약은 욥의 질문에 대한 긴 답변이다.

     욥기 1장과 2장에는 욥을 두고 하늘에서 열린 두 차례의 회의를 묘사한다. 여기에서 회의는 하나님께서 모든 천사들을 소집하신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대적자인 사탄도 와있었다. 사탄은 하나님께 반역한 후에 하나님께 유죄판결 받고 선고도 받았다(14:12-158, 28:12-19). 그러나 그 선고는 지금까지 완전히 집행되지 않았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와 주권으로 사탄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제한된 일정 시간을 허락하시어, 그분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부정적인 방면의 필요를 채우는 어떤 일들을 하게 하셨다.

     욥의 영광은 그의 온전함과 올곧음이었고, 그의 관은 그의 순전함이었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스스로 온전하고 올곧았던 타고난 욥을 허물어뜨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로 새롭게 된 욥을 건축하시려는 것이었다. 허물어뜨리고 소모시키고 벗겨내는 일은 보통 천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사탄만이 할 수 있다. 욥의 많은 자녀들, 종들, 가축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아무런 미련없이 해치울 수 있는 자는 사탄밖에 없다. 이때를 위하여 사탄도 하나님의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일생을 돌아보면 40세까지는 어떤 고난도 겪지 않았다. 나는 착한 사람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타고난 것이었으며, 본성으로 칭찬을 받았다. 나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알았고 형식적으로 믿었다. 40세가 되면서 하나님은 나의 삶에 개입하셨다. 사탄이 나의 삶을 산산조각 내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궁지에 몰렸다. 사면초가, 위기일발이었다. 나는 욥처럼 하나님께 따지지는 않고 살려 달라고 소리쳐 외치고 기도하였다. 수많은 밤을 새우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다. 주관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주님이 가시를 치워주지 않으시 듯, 만나 주셨지만 자랑스럽게 여겼던 직장은 지켜 주시지 않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약 20년간 광야생활을 경험하게 하셨다. 나는 광야에서 타고난 본성이 벗겨지고 소모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좋은 땅인 회복의 교회에 들어왔다. 나는 지금도 한 방면에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가장 좋은 나의 몫, 하나님을 나의 분깃으로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타고난 혼과 몸은 벗겨지고 소모되고 있다. 구약의 욥기만으로 고난의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 욥기를 추구하면서 신약 전체가 욥의 고난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고난들에 대해서 이 다음에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왜 그렇게까지 하셨느냐고 여쭈어 보고 싶었던 대답을 얻게 되었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타고난 것들은 허물어지고, 흘린 눈물은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보석으로 변했다.

    형제님들, 나는 아직 내가 붙잡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일만을 합니다. 즉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나에게 주실 상을 위하여 푯대를 항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위로 부르셨습니다(빌립보서 3:13~14).” 이렇게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것을, 나도 고백하기 원한다. 이렇게 될 때만이 고난은 의미가 있고, 귀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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