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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찬양하지 않는가?
    회복의 길 2018. 7. 29. 21:14


                시 22:3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서 보좌에 앉으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찬양을 통해 솟아오른다. 찬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주님을 접촉하는 것이다. ··· 우리는 시련가운데 있을 때 하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그보다 우리는 시련을 초월하여 솟아올라야 한다. 일단 찬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시련을 초월하게 된다.


    22년전 은행에 다니고 있을 때, 쓰나미같이 밀려오는 사건 앞에서 나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나에 대해 악의적인 기사를 게재한 지방지 사회면 기사를 필두로, 본점 검사팀의 특검, 경찰 출두지시, 검찰출두 지시, 민사소송 제소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나로서는 욥의 시련이었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기가 막혀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약간의 세월이 흐른 후 점심 때 빈 성당에 가서, 찬송가(성가)를 불렀다. 의미는 몰랐지만 기도도 할 수 없는 답답한 환경속에서 한 30분씩 찬송을 하다 보면 가슴이 후련해졌다.  회를 거듭할수록 주님의 위로가 있었고, 주님의 임재가 있었다. 주님의 임재로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내 인생 최대의 시련은 주님과 달콤한 교통을 하는 기간이 되었다. IMF경제사태로 2년후 은행을 퇴직하게 될 때에, 다른 것에 눈길을 주지 않고, 주님을 더욱 알기 위해 가톨릭 교리신학원이라는 곳에서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바울과 실라는 지하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고통과 손실 가운데서 드려진 이러한 찬양이 바로 찬양의 희생 제물인 것이다. 나는 22년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서, 기도할 엄두가 안 날 때, 찬양을 드렸다. 그것이 희생제물이 되었다. 그 사실을 지금껏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찬양이 주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회복 안에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하신 주님께 찬양 드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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